Life

대학원생 4년차에 들어서며

일공ILGONG 2025. 2. 9. 15:25

이 블로그는 4년동안 정체되어 있었다. 정확히 내가 연구실 생활을 시작한 시점부터 흐른 시간이다.

지난 시간동안 새로운 인연들과 관계를 맺고, 때로는 나 자신을 잃어가며 연구실 일에 매몰되기도 하고, 또 어떤 때에는 값진 성과를 얻기도 했다.

이렇게 적고 보니 엄청 다이나믹한 시간을 보냈을 것 같은데, 사실 대부분은 지루했다.

석사 시절에는 이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겠어서 탈출을 꿈꾸고 각종 회사 인턴이나 산학장학생 등의 활동들을 해보기도 했다. 확실히 지루하진 않았지만 재미있지도 않았다.

그러다 문득 지루한 상태가 꼭 나쁜 건 아니라는 생각과 함께 원하는 일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이 쉽게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란 걸 깨닫고는, 무모하게 석박통합과정을 시작했다.

 

그리고 지금은 석박통합과정으로 전환한 지 1년, 대학원생 신분으로 생활한 지 3년이 지났다. (학부생 연구 기간까지 합치면 4년동안 연구실 생활을 이어온 셈이다.)

아직 만족할만한 성과를 쌓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크게 불행하지도 않다. 이제는 꾸준히 내 연구도 하고 연구실 업무도 적절히 수행하면서 종종 자기계발도 하는, 그럭저럭 재미있게 사는 법을 터득한 것 같다. 그래서 지난 4년동안 깨닫은 점들과 아직 모호한 점들은 어떤게 있는지 정리해보는 시간을 가져보기로 했다.

 

얻게 된 생각들

  • 인공지능 분야 특성상 지속적인 트렌드 트레이싱(Trend tracing)은 불가피하다. 한 가지 주제만, 내가 익숙한 것만 취하겠다는 행동은 부적절하다. 새로운 기술을 꾸준히 익히고 어떤 연구를 해볼 수 있을까 생각해보는 데에 익숙해지면 좋다.
  • 술은 백해무익하다. 세상에 유익한 취미는 많다. 운동, 독서, 뜨개질 등등 장기적으로 좋은 방향으로 이끄는 취미를 가져두면 건강하게 스트레스를 관리할 수 있다.
  • 내 연구 외 업무는 누구나 하기 싫다. 팀원이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들어보고 항상 업무에 들이는 노력을 최소화 하는 방향은 무엇일지 고민해보는 게 좋다. 초기에 고민하지 않으면 나중에 그대로 돌아와서 고생하는 경우가 많다.
  • 연구 성과가 빠르지 나오지 않는다고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. 걱정한다고 뭔가 일이 빠르게 진행되는 건 아니다. 뭔가 계획대로 안되면 그냥 계획을 다시 세우는 게 낫다.
  • 엄청나게 fancy하고 완벽한 연구 주제는 없다. 어떤 주제를 잡고 연구를 진행하다보면 뜻대로 되지 않거나 내 생각보다 주제가 초라해보일 때가 많았다. 그럴 때면 더 괜찮아 보이는 주제로 옮겨가는 짓을 많이 했었는데, 사실 그 주제도 똑같다. 어떤 연구를 하든 뻔뻔해져야 하는 시점이 있고, 그 시점을 견뎌야 성과물이 나오는 것 같다.
  • 영어는 닥치면 하게 되어있다. 어떤 언어를 잘 구사하려면 그 언어를 쓸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. 나는 특히 영어 울렁증이 있었고 아직도 영어를 써야하는 상황이면 긴장하는 편인데, 랩 세미나를 영어로 진행한다거나 학회나 수업에서 영어로 대화하는 경험을 많이 하면서 예전보다는 자신감이 많이 생겼다. 
  • 내 연구 외의 지식들은 꾸준히 공부해야 한다. 나는 학부 때 심리학과 컴퓨터공학을 복수전공 했지만 부끄럽게도 두 분야 모두 기억 나는 게 별로 없다. 예전에 공부했던 내용들을 꾸준히 상기시키지 않으면 금방 까먹는다. 이건 내 기억력이 좋지 않아서 일수도 있는데, 아무튼 그래서 꾸준히 공부하려고 한다.
  • '열등감'은 엄청난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. 학계에서는 특히 남들과 비교하게 되기 쉬운 것 같다. 그래서 대학원생 시절에 열등감을 갖게 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은데, 이걸 잘 활용하면 엄청난 동기부여가 될 수도 있지만 잘못 활용하면 꼬인 사람이 된다. 한 사람의 행동이나 성격을 조작할만큼 엄청난 에너지를 갖는 감정이라 스스로를 꾸준히 돌아보고 감정을 잘 다룰 필요가 있다.
  • 성실하면 정신 건강에 좋다. 나는 이동진 영화평론가의 '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인생 전체는 되는대로'라는 슬로건을 좋아한다. 예전에는 무언가를 성취하고자 하루하루 조급하게 살았던 것 같다. 조급한 마음을 가지고 살면 오히려 생산성이 떨어진다. 되는대로 살아도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살 수 있다. 그리고 성실하게 살다보면 어느새 나도 모르게 무언가를 성취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. 이런 성실함의 선순환을 믿는 편이다.

아직 모호한 점들

  • 내가 하고 있는 연구들이 나중에도 필요할까? 매일 비슷한 연구 논문들이 쏟아져 나오는 걸 보면 불쑥 이런 생각이 든다. 필요한 연구를 하고 싶은데, 논문을 위한 연구를 하고 있는 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.
  • 연구는 결국 혼자 하는 것 같으면서도,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절대 완성할 수 없다. 하루에도 몇 번씩 왔다갔다 한다. 다 차단하고 내 연구 주제에만 몰두하고 싶다가도, 점점 커지는 실험 스케일에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완성할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.
  • 내가 하고 싶은 연구 주제를 고집해야 할까? 이건 졸업 후에 어떤 일을 하고 싶은가에 따라 다를 것 같다. 나는 어떤 길이든 열려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하고 싶은 연구도 하고 해야하는 연구도 마다하지 않고 하는 편이다. 만약 특정 주제에만 집중해서 연구했다면 논문을 더 많이 쓸 수 있었을까? 그건 모르겠다.
  • 저녁 혹은 주말의 삶을 챙기면서 연구도 잘 할 수 있을까? 이건 진짜 제일 어렵다. 그래서 나는 시즌제(?)를 택했다. 업무가 많아지거나 데드라인이 존재한다면 일상적인 생활은 그냥 거의 포기해버린다. 그러다가 너무 매몰된다 싶으면 다시 슬그머니 빠져나와 친구들도 만나고 주말에 놀러가기도 한다. 진득하게 한 가지 일만 하는 건 나한테는 너무 어려운 일이다.
  • 돈은 어느 정도로 벌어야 할까? 사실 대학원을 택한 순간부터 돈을 잘 버는 삶과는 멀어졌다고 생각한다. 하지만 그래도 앞으로 집도 사고 결혼도 하고 육아도 하려면 어느정도 안정적인 자금이 필요하다. 그래서 인턴이나 강의 등 제의가 들어오면 혹하기도 한다. 하고 싶은 일이나 연구를 하면서 돈도 잘 벌 수 있는 방법은 없지 않나.

 

지금까지 대학원생 4년차에 들어서며 얻게 된 생각들이나 아직 모호한 점들을 정리해봤다.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라 이런 글을 올려도 되나 망설여지지만 누군가에겐 도움이 되지 않을까하여 올려본다.